소설 러브레터 1
후지이 이츠키(藤正樹:ふじいいつき)가 죽은지 3년이 지났다. 그리고 3월3일의 3주년.
히나마츠리(일본전통의 마츠리중의 하나) 바로 그날, 코베(神戶)에는 희한하게도 눈이 왔다.
高臺에 있는 공동묘지도 눈
속에 파묻혀 검은 상복에도 하얀 얼룩으로 물들었다. 히로코(博子:ひろこ)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색의 하늘에서 한없이 내리는
하얀 눈은 꾸밈없이 아름다웠다. 눈덮힌 산에서 죽은 그가 마지막으로 본 하늘도 아마 이런 것이었을까.
"그 애가 뿌리고
있는 것 같네."
이츠키의 어머니인 야스요(安代:やすよ)가 그렇게 말했다. 히로코의 시어머니가 되어있을 사람이었다.
향피울 차례가 돌아 왔다. 묘 앞에서 합장하고, 다시 그와 마주본 히로코는 묘하게도 기분이 온화한 것에 스스로도 놀랐다.
세월이란 것이 이런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히로코는 좀 마음이 복잡해졌다.
'매정한 여자라서 미안해.'
히로코가
세운 향은 순식간에 엷은 연기를 내고 있었지만, 눈 한 송이가 그 끝을 건드려 불을 꺼트렸다. 히로코한테는 그것이 그의
장난같이 보였다. 가슴이 메어왔다. 향이 다 탈 동안 히나마츠리에 연관한 따뜻한 단술이 대접되었다. 참배자들도 갑자기
떠들썩하게 돼서 차종(찻잔?)에 몸을 녹이며 각자 사소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이츠키의 친척이었다. 그리고 이츠키에 대해서 별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의 묘지를 앞에 두고 있으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無에 가까웠다. 말이 없고 달라붙기 힘든(取っ付きにくい) 그의 사람됨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겠지. 젊었는데. 그들에게는 그 정도로 밖에 할 얘기가 없는
고인이었다.
"나는 단게 싫어. 매운 거 없나? 입맛이 매운 술은?"
"나도 그게 좋아."
남자들의 요구에 이츠키의
아버지 세이치(精一:せいいち)가 응해, 아스요를 불렀다.
"야스요! 당신 그거 갖고 와. 菊正인지 뭔지 있었지?"
"지금?
어차피 나중에 맘대로 마실텐데."
"괜찮으니깐, 공양. 공양"
기분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야스요는 菊正을 가지러 갔다.
이리하여 눈 속에서 부랴부랴 연회가 시작되자, 菊正 1병으로는 모자라서 계속 날아오는 한 되들이 병이 눈 위에
늘어섰다.
"히로코씨,,,,"
갑자기 말을 걸어온 쪽은 이츠키의 산후배들이었다. 아까부터 구석에서 서먹서먹하게
모여 있던 것을 히로코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이츠키의 원래 친구, 그와 함께 산에 올라 그를 두고
떠나보내고 하산한 중요한 파티의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늘 선배들은 집에서 근신(謹愼)합니다."
"모두들
아직까지 죄의식을 갖고 있어요. 아키바(秋葉;あきば)씨도 그 때부터 한번도 산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아키바는 이츠키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그리고 그 마지막 등산의 리더이기도 했다. 벼랑 밑으로 떨어진 이츠키를 버릴 결심을 한 것도 그였다.
장의(葬儀)날, 아키바와 파티동료들은 이츠키의 친족에게 삼열(參列)을 거부당했다. 그 때는 모두들 감정적이었다.
"산의
법칙 따위는 산 위에서밖에 통하지 않는다고!
"
친족중의 한 명이 아키바와 그 동료들에게 그렇게 욕한 것을 히로코는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말한 당사자는 과연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 저기서 술을 처마시며 법석을 떨고있는 사람들 속이 있을 게
분명했다.
"모두들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후배들은 말끝을 흐리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 명이 살짝 가르쳐 주었다.
"사실은, 선배들은 오늘밤 몰래 참배하러 올 계획을 세운 것 같습니다."
법요(法要)가
끝나고, 요정의 연회가 다음 차례였다. 그러자 눈 밑에서 달게 참고있던 인내력이 단숨에 사라져 모두들 갑자기 추워하면서 빠른
발걸음으로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히로코도 권유를 받았지만 사양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있는 참에 세이치가 와서 창문을
두들겼다.
"히로코, 미안하지만 돌아가는 길에 이 사람 집 앞에 떨어트려 줘."
보니깐 아스요는 관자놀이를 누르면서
괴로운 듯 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몰라, 갑자기 머리 아프다고 말해서,,,"
세이치는 문을 열고 야스요를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아야! 아파요! 그렇게 세게 밀면 아프잖아요!"
"무슨 소리하는 거야. 이제부터 젤 중요할 때에.
정말 도움이 안되는 사람이군."
아스요를 야단치는 세이치는 돌아보며 히로코에게 미안한 듯이 웃어보였다. 그 세이치의
등뒤에는 술에 취한 친척 한 명이 착 달라붙어 왔다.
"治夫, 벌써 취한 건가?"
아니라고 손을 흔드는 사내의
다리는 이미 엉켰다. 사내는 차안에 있는 히로코를 바라보자 창문으로 얼굴을 쑥 들이밀었다. 술냄새가
차안에 꽉 찼다.
"오, 히로코였나?"
"이것 봐."
세이치가 당황해서 사내를 차에서 떼 내었다. 같이 가면서 사내는
꼬부라진 혀로 노래를 불렀다.
"아가, 잘 들~~~~어~~ 산사나이한테 반~~~하~~지~~~마"
"어허, 이
사람"
세이치는 사내의 머리를 치면서 히로코에게 용서하란 듯이 머리를 숙였다. 익숙치 않은 눈길을 느릿느릿 내려가면서
히로코의 차는 공동묘지를 뒤로했다.
"아버님도 참 큰 일 이겠어요."
"아니, 대단한 척 하는 것이야."
거울
건너편으로 야스요를 보니, 두통은 어디로 갔는지 태연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오늘도 이제부터 밤새도록 술마시고 노래하고
야단법석이야. 그게 즐거움이야. 하지만
너무 즐거운 것같이 있으면 체면이 안 서니깐 저렇게 해서 바쁜 듯하게 처신하는 게야.
모두 다. 공양 공양이라고 하면서도 단지 술이 마시고싶으니깐, 저 사람들은,,,"
"어머님,
머리는?"
"응?"
"꾀병이에요?"
히로코는 거울너머로 웃음을 머금었다.
"왜
그러니?"
"아녜요,,,"
"왜? 히로코."
"모두 여러 가지로 꾸미고 있겠지라고,,"
"모두? 모두가
누구?"
"아키바씨와 그 동료들."
"아키바가 어떻게 됐어?"
"뭔가 꾸미고 있다니깐요."
"뭐를?"
하지만 히로코는 그 후를 애매한 웃음으로 흐려버렸다.
차는
스마(須磨:すま-지명)에 있는 후지이집에 도착했다. 야스요가 졸라서 히로코는 문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무척 어두컴컴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지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비치고 있는 느낌이었다. 거실에는 인형이 없는 히나단(히나인형의 진열대)이 있었다.
백골나무상자가 곁에 쌓여 있어 뚜껑을 열어보니 오다이리(お內裵(だいり):천황과 황후의 모습을 본 떠 만든 한 쌍의
인형)가 얼굴을 내밀었다. 차를 내온 야스요는 쑥스러운 듯이 변명했다.
"중간까지 만들었는데 오늘 여러 가지 준비도 있고
해서 그만뒀어."
그리고 나서 두사람은 다시 히나인형을 장식했다. 히로코가 아는 히나 인형에 비교하면 이곳에 있는 것은
한눈에 봐도 한층 크고 디자인도 고풍스러웠다.
"꽤 예쁜 인형이네요."
"오래됐지? 증조할머니때부터 벌써 있던 거라고
하니깐,,,"
야스요의 얘기에 의하면 이 인형들은 며느리를 맞을 때마다 대대로 전해져 온 것이라고 한다. 역대의
새색시들의 생애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것이다. 그 사람들 중 몇 명은 아마 그 묘지에서 그와 함께 잠자고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히로코는 작은 빗으로 인형머리를 빗겼다.
"1년에 1번밖에 밖에 나오지 않으니깐 반드시 장수할거야.
얘들은,,,"
야스요와 그렇게 말하고 물끄러미 인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저녁이 되어도 눈은 그치려고 하지 않았다.
두사람은 이츠키의 방문을 열었다. 고등학교에서 미술선생을 하고 있던 이츠키의 방은 유화 캠버스로 파묻혀 있었다. 히로코는 책장에서 스케치북
한 권을 꺼내 책상 위에 펼쳤다. 어느 페이지도 본 적이 있는 그림이었다. 그리고 어느 그림에도 지나간 날들의 냄새가
풍겼다.
히로코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츠키를 곁에서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지금엔 유품이 되어버린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잊기 시작한 시간이 되살아났다. 왓슨紙위를 달리는 연실 소리가 아직도 들려오는 듯 했다.
추억 속에 잠겨 있던 히로코를
야스요의 목소리가 현실로 되돌렸다.
"히로코, 이거 이거"
야스요가 책장에서 발견한 책 한 권을 히로코에게
건넸다.
"아! 졸업앨범."
그건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이었다.
,,,,,,,,오다루(小樽)시립
이로나이(色內)중학교.
"오다루였습니까?"
"응, 오다루. 그 후가 요코하마. 그리고 하카타, 그리고 코베"
"전부
좋은 데네요."
"살아보면 어디라도 마찬가지야."
"정들면 고향 같지 않아요?"
"살아보면 다 고향 같지. 오다루는
조용해서 좋은 곳이었어."
"어느 부근입니까? 오다루의,,,"
"어디였더라,,, 하지만 이젠 없어졌어. 국도 밑에
깔려버려서"
"그래요?,,,,,,, 아! 있다."
페이지를 넘기고 있는 동안에 히로코는 중학시절의 그를 발견했다. 반의
단체사진에서 벗어난 곳에 홀로 동그랗게 독사진으로 공중에 떠 있는 것이 그였다. 그 모습은 히로코가 알고 있는 그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전학했어. 졸업 전에."
"그래도 전혀 변하지
않았네요."
"그러니?"
야스요가 앨범을 쳐다보았다.
"지금 와서 보니 어쩐지 불길한 사진이네."
그로부터
두사람은 단체사진 속의 중학생들의 얼굴을 쫓아 놀았다. 야스요는 교복 입은 소년들 상대로 하기에 벅찬 나이인데도 얘 귀엽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다, 등등 히로코를 웃겨 주었다.
"첫사랑도 있었다지"
야스요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학생 얼굴을
따라갔다. 그리고 한 명을 가리켰다.
"어머, 얘, 히로코하고 닮지 않았니?"
"예?"
"혹시
첫사랑?"
"얘예요?"
"첫사랑한 사람의 기억을 쫓아간다고 하지? 남자들은,,,"
"그래요?"
"응,
그래."
히로코는 앨범에 얼굴을 대고 열심히 쳐다보았지만 어디가 닮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히로코는 다른 곳에 그의
사진이 있는지 페이지를 넘겼다.
"이츠키씨, 동아리는 뭐였어요?"
"육상부"
히로코는 육상부의 사진을
찾았다.
"있다. 있다~~"
그건 단거리 경주의 사진이었다. 이츠키가 발이 걸려 넘어지려고 하는 순간을 포착하였다.
좀 불쌍한 사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하네요."
사진 밑에는 『후지이의 라스트 런!』이란 멘트가 들어가 있었다.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히로코는 우스워서 무심코 풋하고 웃어 버렸다.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나서 야스요가 일어났다.
"케이크 먹을래?"
"예?
아뇨,,,,"
"콤 시노우의(빵가게 이름),,,"
"그럼,,먹을래요."
야스요가 방을 나갔는데도 히로코는 앨범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딘가에 찍혀있을지도 모르는 그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성 들여 찾았다. 맨 마지막 페이지의 주소록마저
놓치지 않았다. 히로코는 그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쫓았다.
"후지이 이츠키,,,,,,,, 후지이
이츠키,,,,,,,"
그리고 손가락 끝이 이름을 붙잡았을 때, 히로코 속에서 기묘한 계획이 번득였다. 히로코는 그의
책상에서 펜을 빌려 손바닥에 쓸려고 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소매를 걷어올리고 흰 팔 위에 주소를 옮겨
적었다.
,,,,,,,,,,,,, 小樽市 錢函 2丁目 24番地.
케이크와 홍차를 갖고 야스요가 들어왔을 때에는 히로코의
하얀 왼팔은 이미 카디건 밑으로 숨었다.
"무슨 일 꾸미고 있어?"
야스요의 한 마디에 히로코는
철렁했다.
"예?"
"아키바들,. 뭔가 꾸미고 있지?"
"예?,,,,,,,아~. 오늘밤 야간 기습을
한다고."
"야간 기습?"
"밤에 몰래 참배한다고요."
"오잉~~~~ 그렇구나."
야스요는 놀라면서도 어딘지
즐거운 듯했다.
"그러면 우리애도 오늘밤은 잠 못 자겠네."
그날 밤, 아키바씨와 그 일당들이 아마도 스스로의 계획을
실행하고 있을 즈음, 히로코는 이츠키앞으로 편지를 썼다. 주소는 아까 적은 왼팔의 주소였다. 만약에
야스요가 말한 대로 국도 밑에 깔려있다면 결코 보내질 리가 없는 것이다. 어디로도 보내질 리 없는 편지. 어디로도
보내질 리가 없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그의 앞으로 붙인 편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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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건강합니까? 저도 건강합니다.
와타나베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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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내용은
이것 뿐이었다. 단단히 생각해 몇 장이나 꾸겨 버린 후에 쓴 편지가 이거뿐이라는 것이 스스로도 이상했지만, 짧은 게 간결하여
히로코는 맘에 들었다.
'그도 반드시 맘에 들어 할거야.'
히로코는 그 편지를 밤에 근처 우체통에 넣었다.
우체통 바닥에 바삭거리는 작은 소리는 내면서 싱겁게 끝나 버렸다. 이것이 후지이 이츠키의 기일의, 히로코 나름의 계획이었다.
그치기 시작한 눈은 아직 팔랑팔랑 거리며 밤하늘을 날고 있었다.
그 이상야릇한 편지가 날아든 것은 3월 초의 일이었다. 그날은 그 동안의 감기가 드디어 본격적인
활동을 해서 아침에 처음 잰 체온이 38.5도를 기록한 날이기도 했다. 직장인 시립도서관에 전화를 해서 우선 의무는 해 놓은
나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침대로 뛰어 들어 2번째의 잠을 즐기고 아침식사를 늦게 하고 난 후에 거실의 쇼파에서 3번째 잠을
맛보았다.
그 달콤한 꿈맛을 방해한 것은 우체부의 낡아빠진 오토바이소리였다. 우체부인 토시미츠(利滿)는 뭐라고 할까,
여자를 보면 말을 걸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골이 좀 빈 남자이다. 그리고 그 특징적인 기이한 타고난 음성이 가끔 나의 신경을
극도로 거슬리게 하는 것이다. 오늘같이 몸 상태가 대단히 안 좋을 때에는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판단력이 둔한 그 날의
나는 그것을 깡그리 잊어먹고 무심코 무방비의 모습 그대로 문을 열어 버렸다. 무방비란 것은 머리도 빗지 않은 부스스한
머리라든지 얼굴 반 정도를 덮고 있는 커다란 마스크라든지, 카디건 밑의 단벌 파자마라든지, 대충 그런 거였다. 그런 모습의
나를 토시미츠는 놀람과 기쁨이 반반인 눈길로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잉? 오늘은 있네!"
"샌들을 걸친 나는 다음
발이 멈추었다.
'읔! 이럴 수가'
몽롱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오늘 쉬는
날?"
",,,,,,,,,,,,,,,,,,,,,"
"감기 걸린 거여? 마스크 같은걸 하고
있고,,,"
",,,,,,,,,,,,,,,,,,,,,"
"이번 감기는 지독하지."
나로서는 분명하게 그냥 지나칠 작전이었으나 이대로 라면 언제까지나 계속
지껄일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서 우편함까지 달렸다.
"보소, 영화 티켓 2장있는데, 토요일날
어때?"
토시미츠가 뭔가 소리쳤으나 신경 쓰지 않고 나는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꺼내 재빨리 U턴해서 단숨에 집안으로 뛰어
들었다.
"아! 이츠키씨!!"
나는 무시하고 문을 닫았다. 그 짧은 순간의 왕복운동도 지금의 나에게는 좀 힘든
운동이었다. 격심한 심장의 박동으로 내 몸은 현관에 주저 앉았다. 이것도 전부 토시미츠 탓이다. 그 토시미츠가 이번엔
초인종을 계속 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화가 나는 것을 참으며 인터폰으로 향했다.
",,,,,,예.
뭐죠?"
"이츠키씨! 편지 떨어뜨렸어요!"
바깥에서 나는 큰 목소리가 인터폰의 목소리와 짬뽕이 되어서 들렸다. 그 목소리는
자기가 한 일을 칭찬해 달라는 애들같이 몹시 힘이 넘치고 있었다.
"아. 미안합니다. 우편함에 넣어
주세요."
토시미츠의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에 대문을 여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맘대로 들어오지마!'
내 마음속
외침에도 상관없이 토시미츠는 불법침입 한 끝에 현관문을 쾅쾅 두들겼다.
"이츠키씨! 편지~~~편지~~~~~~"
토시미츠는
몇 번이나 문을 두들기면서 편지 편지라고 짖고 있었다. 현기증이 나는 걸 느끼면서 나는 한번 더 샌들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눈앞에 있을 거라 생각한 토시미츠는 왠지 이쪽으로 등을 돌리고 마당 쪽으로 굽실굽실 인사를 하고 있었다. 누구한테 인사를 하고
있는 걸까 하고 보았더니 우리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마당의 장미 정원에서 그 엄숙한 얼굴을 내밀어 보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고 손을 흔들자 나무 사이로 몸을 숨겼다.
",,,,,,,,당신이 큰 소리를 내서 그래요."
"미안.
,,,,,,,,아, 이거, 떨어뜨린 거."
토시미츠는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그리고 벌렁 큰 입을 벌리고
말했다.
"러브레터?"
이런 타입의 농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여러 가지 일을 연애얘기라든지 성적인 심벌로
바꿔버리는 타입의 농담에 대해서는 내 몸은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메커니즘으로 되어 있다. 요약하면 거의 발작순간에
왼손이 편지를 빼앗아, 정신이 드니 오른손이 문을 잠그고 있는 듯한 상태로 제 멋대로 신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문 밖에서
토시미츠는 순간 뭐가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채 큰 입을 떡 벌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우편물을 종류별로 나눠 내
몫만 빼내고 나머지는 부엌의 사이드보드 위에 놓고 2층으로 올라갔다. 내 앞으로 온 편지는 1통 뿐이었다. 보낸 사람을 보니깐
전혀 기억이 없는 이름이었다.
와타나베 히로코.
주소는 神戶市였다.
,,,,,,,,,,,,코베의 와타나베
히로코.
코베는 이것이 아마 내 인생 중에서 처음으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알고 있다는 것만의 지명이었다.
그런 코베의 와타나베씨.,,,,,,,,,,,, 와타나베씨머리를 갸웃거리면서 우선 나는 봉투를 뜯었다. 속에는 편지지가 1장. 그 1장의 편지지를 본 나는
뭐라고 할까 한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떠 버렸다고 할까, 좀 설명하기 힘든 상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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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건강합니까? 나도 건강합니다.
와타나베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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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부였다.
",,,,,,,,,,,이게 뭐야?"
그건 의미불명을 뛰어 넘어서 거의
무의미라고 할 영역에 도달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뭐를 생각하려고 해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멍해진 공간이 부풀어갈 따름이었다.
아마 열 때문이었을 거다. 나는 그 대로 침대에 누웠다.
"와타나베 히로코. 와타나베 히로코, 와타나베 히로코, 와타나베
히로코 히로코,,,"
주문처럼 그 이름을 몇번이나 계속해서 되새겨보았지만,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것도 기억도 전혀
없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수수께끼 같은 편지였다. 무엇보다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 그랬다. 내 경우 트럼프할 때도
세븐브릿지는 가장 자신 있는 것이지만 조커를 빼면 왠지 항상 지고 만다. 그런 나의 약점을 찌른 편지라고 한다면 조금은 알기
쉬울지도 모른다. 밖에서 정나미 떨어지는 낡아빠진 오토바이 소리가 났다. 창밖을 보니 지금 돌아가는 토시미츠의 모습이
어른어른 담장 너머로 보였다. 더 이상 깨어있어도 잘 풀릴 것 같지 않아서 나는 편지를 책상 위에 두고 침대로 기어 들어
갔다.
저녁이 깊어갈 즈음, 선잠에 헤매이다 눈을 뜨니 방안은 이미 깜깜해졌다. 그런데도 침대 속에 미련이 남아서 나는
잠시 몸을 맡겼다. 그 동안에 엄마가 집에 돌어와 저녁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기름 튀는 소리를 들으면서 병든 몸에는 기름기
있는 음식은 안좋은데,,라고 생각하는 동안에 나는 또 다시 잠 속으로 끌려 들어갔다.그리고 꿈 속에서 프라이팬의
기름튀는 소리는 빗소리로 바뀌고 있었다. 빗 속에서 나는 운동장을 달리고 있었다. 중학교의 운동장이다. 달리고 있는 것도 중학생 시절의 나였다. 흠뻑 젖은 채로 나는
묵묵히 달리고 있었다. 아~, 이러면 감기 도져버리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꿈 속의 나는 그만 달릴 수 없었다. 그
사이에 비가 눈으로 변해 나는 덜덜 떨면서 달리기를 계속했다.
눈을 뜨니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씬 젖어 있었다. 그리고
창밖은 진짜로 눈이 내렸다. 시계를 보니 이미 7시가 지나서 애석하게도 저녁식사는 벌써 끝났었다.
"몰랐어. 위에 있다는
걸"
쀼루퉁한 얼굴을 한 나에게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 보니깐 엄마는 오늘 감기로 쉰 거조차 몰랐던 것이다. 나는
혼자서 식탁에 앉았다. 오늘의 주 메뉴는 생선후라이었다.
꿈에서 비를 맞은 장본인은 접시 위에서 완전히 식어 맛없게
보였다.
"죽같은 건 없어?"
"스스로 만들어 먹어."
",,,, 그럼, 필요 없어."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하는 수 없이 해 준다는 것을 교활한 딸은 숙지하고 있었다. 엄마는 귀찮아 죽겠다는 얼굴을 하면서도 냄비를 그릴 위에 놓고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상한 편지? 불행의 편지?"
"좀 틀리다고 생각하는데,"
막 만든 죽을 훌훌 먹으면서 나는
아까 그 편지 얘기를 꺼냈다.
"코베의 와타나베씨라고 엄마는 알어?"
"와타나베씨?"
"와타나베
히로코"
"어쨌든 아는 사이겠지. 네가 잊어먹고 있는 것 뿐이야."
"그렇지 않다니깐. 전혀 모르는 걸. 와타나베
히로코."
",,,,,,,,,,,,,,,,,,,,"
"이상하네. 진짜 이상하네. 있잖아요,
할아버지."
나는 옆방의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래,
이상하군."
할아버지는 듣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듣고 있었다. 화제에 참가할 수 있게 되자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왔다. 후지이 이츠키집의 모든 식구인 것이다. 좀 부족한 감이 드는 가족구성이지만, 후텁지근하지 않을
정도로 딱 좋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뭐라고 써 있니?"라고 엄마의 한 말씀.
"건강합니까. 나도
건강합니다라고."
"그 다음엔?"
"그거 뿐이야."
"엥? 그게 뭐야?"
"보고싶어? 갖고 올까?"
하지만
엄마는 그런 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얼굴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날려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밥 다 먹었으면
약먹어."
이걸로 편지얘기는 끝. 나는 다시 앉아서 감기약병에 손을 갖다 대었다.
"병원에 안 갔니?"
"갈 정도는
아닌걸."
"그런 약은 감기초기밖에 효과가 없어."
나는 못들은 체 하고 약을 업에 털어 넣었다.
"낼은 회사 나갈
수 있니?"
"응~, 그건 좀,,,,"
",,,, 병원에 갈 정도라면 차라리 가혹한 노동을 택하겠어, 나는"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루종일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엄마가 도서관 일을 그런 식으로 우습게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자 화가 났다. 하지만 맞는 점도 있었기에 아무 말도 못했다. 좀 전부터
리모컨을 가지고 우두커니 서 있던 할아버지가 끼여들었다.
"이츠키, 편지 좀 보여 줘."
하지만 난 완전히 맥이
빠져 버렸다.
"편지? 무슨,,?"
",,,,,,,,,,,,,,,,,,,,,"
할아버지는 우물우물 혼잣말을 하면서
거실로 돌아갔다. 낮동안 실컷 자 버린 그 날 밤은 좀 괴로웠다. 전혀 잠귀신이 찾아올 기색이 없은 채로 나는 침대 속에서
뒤척거릴 뿐이었다. 그 묘한 흉계도 그런 잠 못 드는 밤의 선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는 스스로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꾹꾹 참으면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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