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러브레터 11
벌써 4월달인데도 불구하고, 그날 아침은 무척이나 추웠다. 눈이라도 내릴듯한 날씨였다.
목이
이상하게도 뜨거웠다. 또 감기가 도진걸지도 모른다. 오후가 되어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어서 오후엔 조퇴하게 되었다.
"나
병원 들렸다 집에 갈테니깐 부탁해"
그렇게 말하자, 아야코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보았다.
"이츠키가 스스로 병원
운운하는게 희안한데?"
듣고보니 확실히 그러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만큼은 병원에 대한 저항감이 생기지 않았다.
아야코는 오히려 걱정이 가득찬 것 같았다.
"괜찮겠어?"
"응. 맘 변하기 전에 냉큼 갔다올께"
아야코는 더욱 더
불안한듯한 표정이 되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분명히 대단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본 나는, 의사한테서 걱정하지말란 말을 들었다.
"약 먹고, 목욕하지 말고 푹 쉬도록. 약은
3일분치를 줄테니깐"
난 내 뇌부(腦部)의 뢴트겐사진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뇌 부근에 희미한 그림자가 생긴건 왜
일까?
"선생님, 이건?"
"아~, 좀 희미하게 그림자 생긴거. 폐가 염증을 일으켜서
그래"
"폐렴인가요?"
"하하하. 어디 시험삼아서 이 병원 둘레를 한바퀴 전력질주하고 와 보세요"
"예?
달리라구요?"
"그러면 오늘 밤엔 아주 훌륭한 폐렴환자가 돼서 입원하지"
그렇게 말하고 의사는 아무 걱정없이 웃고
있었다.
집에 갈 택시를 잡으려고 길을 걷고 있자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다. 하마구치선생이었다.
"어머, 후지이. 자주
만나네"
"아, 안녕하세요"
그리고나서 잠시 함께 길을 걷게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그 애들이 그 게임이 쓸데없이
정신이 팔려서, 무슨 붐이 일어났어"
"어머어머"
"너도 엉뚱한 선물 남겼네"
"죄송합니다"
"근데, 누구였어?
그런 장난한게?"
"예?"
"너 이름 써넣은 거 말야"
그렇게 말하고 하마구치선생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띄었다.
하마구치선생도 그 첫사랑설을 완전히 믿고 있는 듯했다.
"아녜요. 그거 제가 아닌걸요"
"응?"
"제 이름이
아니라구요"
".............응?"
"기억나세요? 또 다른 한명의 후지이
이츠키인걸요"
"..............."
기억나시죠? 동성동명이었던"
"아~"
"그애
장난인걸요"
"....................."
"생각나세요?"
"응, 남자 후지이
이츠키?"
"맞아요!"
"출석번호 9번"
"우와~ 대단하시네요"
"..............."
"갑자기
왜 아무말도?"
"그앤 특별해"
"?"
"즉었어.
2년전에"
"..............."
"눈덮힌 산에서 조난해서"
"..............."
"물랐었니? 뉴스에서도 크게
떠들었는데"
그 후 하마구치선생과 어디서 어떻게 헤어졌는지가 잘 생각이 안 난다. 정신차리고 보니 택시 안에서 거친
기침을 하고 있었다.
".........괜찮아?"
창 밖을 보니 분명히 집 거너편 찻길이었다. 마침 상점가 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저녁때라 물건사러 나온 사람으로 넘실대고 있는 길을 택시는 천천히 통과했다.아버지가 죽은 그 날, 나와 엄마,
할아버지 세 명은 걸어서 이 길로 지나갔다. 그 때는 정초의 3일간이라 가게도 문 닫았었고,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었다.길 한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물웅덩이를 발견했다. 그런 계절의 물웅덩이는 말할것도 없이 바닥끝까지 얼어붙어
있었다. 나는 도움닫기를 해서 그 위로 미끄럼을 탔다. 엄마가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 바보야!
넘어져!"
하지만 난 넘어지지 않고 그 위로 미끄럼을 탔다.
정말 큰 물웅덩이였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잘 미끄러졌다.
멈출 때까지의 시간이 길게 느껴져서 지금도 그 감각이 잊혀지질 않는다. 물웅덩이의 끝에 멈춘 내 발밑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난 웅크려서 그걸을 자세히 보았다. 엄마도 할아버지도 달려와서 모두 쳐다보았다. 엄마가
말했다.
"........잠자리?"
분명히 그건 잠자리였다. 얼음 속에 갇친 잠자리였다. 신기하게도 날개도 꼬리도 쫙
핀채로 얼어붙어 있었다.
"예쁘네"
엄마가 쉬엄쉬엄 말했다.
갑자기 급브레이크가 날 현실로 돌아오게 했다. 택시는 핸들을 꺽고 길
한가운데서 휙 돌았다. 차 밖에서는 쇼핑백을 든 주부들이 놀래서 휘둥그래하고 있었다. 화가 난 듯한 표정을 지은
아줌마들이 안을 쳐다보았기 때문에 난 엉겹결에 밑을 쳐다보았다.
전열을 가다듬은 택시는 도망치듯이 상점가를
통과했다.
"아이쿠,,,깜빡 했네. 거기에 큰 웅덩이가 있었지. 겨울엔 얼어서 위험한데"
난 기침을 연달아 하면서
끄덕였다.
"비인가?,,,,,,,,,,,,,, 진눈깨비인가?"
운전사는 와이퍼를 한번 돌렸다. 진눈깨비가 창에 하연 흔적을
남겼다.
"이제 4월인데도, 눈이라도 내릴려나?"
하늘은 어느틈엔가 두꺼운 구름으로 덮혀있었다.
*
*
*
역을 내려온 히로코는 코트깃에 목을 집어넣고 조금 떨고 있었다. 아키바는 짐을 들고서 앞을 걷고
있었다.
"추워?"
히로코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인연(因緣)있는 산아!"
그렇게
말하고 아키바는 숨을 크게 쉬었다.
"요 앞에 아는 사람이 있어. 카지(梶)란 이름의 사람인데 모두 카지 아저씨, 카지
아저씨
라고 불러. 오늘밤엔 그 카지 아저씨한테 묵고, 내일 아침 일찍 산으로
출발하자"
"............."
"좋은 사람이지, 카지 아저씨. 히로코도 금방 맘에 들어할거다. 오늘밤엔 남비요리
만들어 기다리라고 해 놨지"
아키바는 카지아저씨, 카지아저씨라고 연달아 불러 히로코를 웃길려고 했지만, 히로코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시골길을 조금 가니 아키바가 문득 멈춰 서서 저 멀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 봐봐,
저기.... 저 산꼭대기가 보인다"
하지만 히로코는 발밑을 보면서 얼굴을 들려고 하지 않았다. 아키바는 그것을 눈치챘지만
별로 할말도 없어서 또 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 둘아보니깐 히로코가 그 자리에서 못박힌 채 서
있었다.
"왜
그래?"
"............."
".......히로코"
".............."
"무슨 일 있어?
발아픈거야?"
아키바는 돌아와서 히로코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뭣땜에 그래? 이렇게
떨다니"
"..............."
"추운거야?"
"..............."
"히로코"
"안돼"
"뭐?"
"역시
안돼"
"..............."
"우리들 뭐하는 거야? 이건 구실밖에
안돼"
"................"
"구실이 없어"
"히로코"
"그 이한테 혼난단 말야"
"그런일
없다니깐"
"돌아가자"
"히로코"
"부탁이야. 돌아가자"
"뭣땜에 온건데. 떨쳐버리기
위해서잖아"
"부탁이야"
"떨쳐버리지 않으면 안돼!
히로코!"
".................."
"히로코!"
아키바는 히로코의 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다. 하지만
히로코의 발은 뿌리가 박힌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히로코"
"...............부탁합니다"
"엉?"
"부탁합니다........
돌아가게 해 주세요"
주변은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현재위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