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는 것

Date : 2004-05-19, Hit : 11782 , IP : 210.119.xxx.xxx

소설 러브레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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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정이 있는 답안지를 찾아냈기때문에 보냅니다.
뒷면의 낙서는 그가 직접 그린겁니다.

                   후지이 이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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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코는 요시코의 그림을 그의 유품인 스케치북사이에 끼웠다. 히로코는 편지를 읽으면서 묘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히로코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두사람의 후지이 이츠키의 관계였다. 동성동명이란 희귀한 관계 속에서 짧은 중학교 3년동안에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이 히로코의 초점이었다. 하지만 차례차례로 오는 편지를 읽어 감에 따라서 히로코는 그런 고리타분한 생각이 차차 녹아 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중학생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를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핵심만큼은 밝혀내고 싶었다. 그 것은 분명히 그가 히로코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은 그가 말하지 않았던 히로코에게로의 메세지같이도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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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답안지 감사합니다.
잘 보관하겠습니다.
그런데 그의 첫사랑 상대방은 어떤 사람이었죠?
짐작가는 사람은 있습니까?

                   와타나베 히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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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와타나베 히로코씨.
그런 그의 개인적인 생활에 관련된 것은 전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 애는 나름대로 상당히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누군가가 있지는 않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오이카와 사나에(及川早苗) 기억하고 계십니까?
어른의 문턱을 넘보았던 여자애. 그 애가 한번은 저한테로 와서
이런 걸 저에게 물어 본적이 있습니다.
"있잖아, 후지이 이츠키랑 누구 사귀는 사람 있어?"
저는 물론 '그런걸 내가 어떻게 알어'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보
다 열받았던 점이 어째서 그런걸 나한테 물어보러 왔냐 하는 것입
니다. 그러고 있으니 오이카와 사나에 그 기집애가
"왜냐하면 너네들 사이좋은거 같아서"라고 말하는 것이예요.
이젠 이런 식으로 비꼬는 데엔 질력이 났었지만, 왠지 오이카와
사나에한테 들으니 끈적끈적한 말투때문인지 묘하게도 진짜처럼
들렸던 것입니다.
내가 정색을 하고 화내니깐 그 애는
"사랑을 느끼지 않어? 그 애한테서"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음 말이 안나올정도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수 있는 걸까하는게 전 정말로 신기했어요. 그리고나서 그녀
는 이렇게 말했죠.
"같은 이름이란게 낭만적이지 않니? 운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어?"
이런 건 당신 편지에도 있었었죠. 혹시 당신하고 오이카와 사나
에는 발상하는게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이말에 신경쓰
지 마세요. 성격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것 만큼은 제가
보증하죠.
그건 그렇고 그녀는 결국엔 이런 말까지 해버렸어요.
"괜찮다면 내가 사랑의 큐피트가 되어줄 수도 있는데"
"거절할래"
전 그렇게 말하고 즉시 그녀 근처를 벗어날려고 뛰었죠.
그런데 그애, 2~3일 지나고 나서 또 나한테로 와서 이렇게 말하
는거예요.
"에이,,뭐야. 진짜로 사귀는게 아니잖아."
"그래서 그렇게 말했었잖아" 라고 내가 말하자
"그 애한테 직접 물어봤어"
이 찐따같은 년 때문에 저는 하마터먼 살인범이 될 뻔했죠. 만약
에 근처에 조각도같은게 있었더라면 분명히 찔렀을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녀의 의도는 지금부터였죠.
"내가 정말로 널 위해서 사랑의 큐피트가 될려고 생각했었어. 그
러니 이번엔 너가 나의 큐피트가 될 차례겠지?"
첨엔 무슨말하는 건지 잘 몰랐지만 간추리면 사나에하고 이츠키
사이를 주선해 달라는 얘기였죠.
장난이 아녔죠. 전 정중히 거절하고 또 재빨리 그녀 근처에서 벗
어날려고 하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어요.
"나란 애, 무슨 짓할지 모르는 여자야"
무대포 협박에 눌린 전 본의가 아니게 그녀에게 항복하게 되었죠.
어느 날, 도서관에 나타난 그애를 책장 뒤로 끌고 가서 사정을
설명했어요.
내 친구가 너랑 친구가 되고 싶다고.
그

 애는 변함없이 벌레씹은 표정으로 '아, 그래' 란 단 한마디. 그
래서 전 미리 약속한대로 그를 그 장소에서 그다리게 하고 오이
카와 사나에를 데리고 왔죠.
그리고 '이제 두사람끼리'라고 말하고 전 일하러 돌아왔죠.
그런데 1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 애가 나오고 그대로 획하니
도서관을 나가버렸어요. 그에 비해서 오이카와 사나에가 좀처럼
나오지 않아서 살펴보러 가보니깐, 그녀는 책장에 기대서 차분한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남자하고 여잔 이런게 반복이야"라고 나
른하게 말을 내뱉고 있었죠.
뭐 살펴보니 교섭은 결렬된 분위기더라구요.
그녀가 돌아간 후에 그 애가 돌아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고 있으니, 마음에 걸려서 물어 보았죠.
"찬거야?"
그러자 그 앤 갑자기 험악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제 그런 짓 하지마!"라고
첫사랑의 상대가 오이카와 사나에가 아니었다는것 만큼은 확실해요.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오이카와 사나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인생의 길을 잘못 나가고 있진 않으면 좋겠는데, 남의 일이지만
걱정됩니다.

                   와타나베 히로코

p.s. 당신이 알고 있는 그에 관해서도 가끔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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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후지이 이츠키씨.
그러고보니 그 앤 분명히 3학년 초반에 교통사고를 당했었습니다.
확실히 기억하고 있죠. 왜냐면 그 사건에 관해서는 저도 전혀 상
관없는게 아니라서요.
어느날 아침, 그 앤 자전거로 학교가는 중에 트럭하고 받아서 구
급차에 실려갔습니다. 담임선생님인 하마구치(浜口)선생님이 황급
히 병원으로 가, 그 날 아침 HR시간은 학생주임선생님이 대신했죠.
그래서 후지이가 사고를 당해서 하마구치선생님이 병원에 갔다는
것과 병원측의 말로는 후지이는 생명에 별 이상없다란 걸 설명하
고 있는 중에 선생님과 제 눈이 마주친 것이었죠.
그 때의 학생주임선생님의 얼굴을 잊을수가 없어요. 입을 쩍 벌
리고 '후지이 너 어떻게 여기 있냐?'라고 물어보더라구요.
으이구,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학교측에선 저와 그 애를 헷갈렸었나 봐요. 그 담부턴
난리법석이었죠. 학년주임선생님도 뛰쳐나가서 결국엔 아침 HR
시간은 흐지부지되어 버렸지만서도, 그것보다 병원쪽에서 잘못연
락 받은 우리 부모님과 늦게 연락받아서 온 후지이부모님이 만나
고, 덕분에 하마구치담임선생님 외에 학년주임선생님도 교장선생
님하고 교감선생님까지 달려와서, 가장 놀란 사람은 사고당한 본
인이 아니었을까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그애한테 들었었나요?
그 앤 틀림없이 다리만 부러졌지만 불

행히도 그 일이 아마 육상
경기대회 1달 전. 그 앤 육상부 선수였죠. 물론 시합엔 나갈 수
없었죠. 꽤 기대를 받았던 모양인데, 모두들 아쉬워했죠.
육상경기대회는 오다루와 삿뽀로의 중학교가 출전해서 치르는 상
당히 알아주는 행사였죠. 평소 학교 운동장에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평범한축에 끼는 육상부의 유일한 공식적인 무대인것이죠.
우리들도 응원하러 가게 되었어요.
100미터 경주가 시작되었는데, 예선 몇차였던가에서 선수들이 출
발선에 쭉 서서 스타트준비를 하고 있는데 제일 끝의 선수 옆에
그애가 있는거예요.
물론 그 애가 서 있는데는 트랙바깥쪽이라 선이 그어져 있지도
않았지만 다른 선수들처럼 클러칭스타트자세를 하고 있는거예요.
거 왜 상체숙이고 엉덩이 치켜올린 자세 있잖아요.
'........설마'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스타트신호가 울리고 그와 동시에 그앤 달
리기 시작했어요. 다른 선수글과 함께말예요. 뼈가 부러진지 채
한달도 안됐는데 터무니 없는 짓이죠. 그앤 달릴 수가 없기에 금
방 넘어져 버렸어요.
웃음바가지가 터졌죠.
그 앤 일어서자 여유롭게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답례를 하면서
퇴장하려고 했지만 시합에 출전한 선수들의 학교애들이 무지 많
아서 깡통이 날라다니고, 신발도 덩달아 날라다니는 난장판이 되
어버렸어요. 정말로 소동을 불러일으키는 애였죠. 그런데 일은 그
걸로 끝나지 않고 선수들이 주행방해이니깐 다시하자는 클

레임을
제기했기 때문에 심판선생님들하고 여러 사람이 나와서 경기장은
한순간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였어요. 결국, 시합은 클레임이 받
아들여져서 다시 하게 되었죠. 그 앤 선생님들한테 호되게 혼난
후에 어딘가로 끌려가버렸어요.
그리고 그 일이 그애한텐 중학교시절 마지막의 스프린트(sprint:
단거리 경주)가 되었어요.
그런 후에 동아리도 나와서(제명된걸지도 모르죠) 시간이 남아돌
기라도 하는지, 그 애도 가끔씩 도서관에 오게 되었답니다.
그래도, 여전히 일은 도와주지 않았고 혼자 창가에서 운동장을
폐인처럼 바라보기 했죠. 하지만, 폐인이 됐어도 전에 말한 장난
은 여전히 계속했어요. 하얀 도서대출카드에 이름을 새겨 넣는 장난.
그가 육상에 몰두했던 건 뼈아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장난에 몰두했던 그 애의 진의는 아직도 의문입니다.

                   후지이 이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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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 뒷쪽 사무실에서 히로코는 아키바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공(職工)들의 모습에 어울려 바쁜듯이 작업하는 아키바의 모습을 자그마한 창문으로 보았다. 보아하니 아직 좀 더 걸릴것 같았다.
삐걱거리는 나무의자에 앉으면서 히로코는 미망(迷妄)의 못(淵)속에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스즈미가 차를 갖고 왔다.
"선생님 곧 끝나시니깐요"
"고마워요"
히로코는 손안에 있던걸 태연하게 감추었다. 스즈미는 히로코 옆으로 앉았다.
"히로코씨, 괜찮아요"
"예?"
"모두 입다물고 있으니깐요"
스즈미는 생끗 웃어보였다. 히로코도 웃음으로 대답해 주었다.
"전 아키바 선생님이 좋거든요"
스즈미는 웃음을 간직한 채로 그렇게 말했다.
"히로코씨라고 생각했기때문에, 단념했어요. 전 히로코씨도 좋거든요"
"............"
"선생님말예요, 히로코씨가 전에 분하고 사궜을 때부터 히로코씨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쭉 짝사랑을 해 왔던 것같아요. 알고 있었어요?"
히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잘됐네요. 아무쪼록 선생님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러죠"
"아~, 선생님이 히로코씨를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거네요.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해 둘께요"
그리고 스즈미는 일어났다.
"오늘 데이트해요?"
"예?"
"선생님이 아침부터 멋진 넥타이 매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스즈미는 작업실로 돌아갔다. 히로코는 엷은 탄식을 쉬었다. 히로코는 손에 이츠키의 편지를 쥐고 있었다. 히로코는 한번도 그것에 시선을 주었다. 스즈미가 아키바를 사모하고, 아키바는 히로코를 연모하고, 히로코는 후지이 이츠키를 그리고, 후지이는 예전에 동성동명인 여자애를 흠모했고, 그리고 그 여자애는 지금, 예전의 동성동명의 남자애의 추억을 되살리고 있다.
생각한다는 일은 행복한 일.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혼자만 불행한 기분이 드는 자신이 몹시도 쓸모없는 인간같은 느낌이 들어 비참했다. 복도에서 『푸른 산호초』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아키바의 일이 끝난것 같았다. 히로코는 편지를 가방 속 깊숙히 넣었다.
"그 후엔 편지와?"
"응. 지금도 가끔"
"그렇구나. 완전히 펜팔친구되었네"
차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아까부터 일방적으로 아키바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기 보다 무슨 말을 해도 히로코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어째 요즘 히로코 기운이 없어보여"
"................."
"무슨 일 있어?"
히로코는 애매한 웃음을 진 얼굴로 얼버무렸다.
"있잖아"
"응?"
"한번 그 산에 가보지 않을래?"
".................."
"그 놈한테 인사하러 가자"
".................."
"응?"

".................."
대답없는 히로코에게 아키바는 시종일관 웃음을 띤 얼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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