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러브레터 7
와타나베 히로코앞으로 사과의 편지를 쓴지 1주일이 지났다. 내 감기도 호전되어 도서관에도 드디어
접수처에서도 좋다고 허락받았다.
히로코가 내 집앞에서 썼다고 하는 그 편지는 "터줏대감"에게만 보여주었다. 내 입장에서
그건 그것으로 매우 드라마틱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터줏대감"의 취향에는 맞지 않은듯 했다.
"이게 뭐야.
빌리 밀리건이 아니잖아. 에이~"
그것이 "터줏대감"의 감상이었다.
집에서는 이사 얘기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아베
카스씨의 노력으로 드디어 적당한 맨션을 찾아내었다. 이번 사전답사에는 나도 따라가게 되었다. 오다루역 바로 옆의 햇빛이
잘드는 방이었다. 방의 배치는 지금 집보다는 확실히 비좁았지만 그 낡아빠진 집을 팔아치우고 세금 다 내고, 그 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라면 넓은 평수 따위는 바랄 수도 없었다.
"세 명이 살기엔 딱 좋네"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렇죠. 지금 사는 집은 세 명이 살기엔 너무 넓죠?"라는 아베 카스.
"그래요, 방이 세 개나
놀고있으니깐"
"그렇죠?"
"하숙생을 받아도 되었을텐데"
"お義姉さん. 그딴거 생각하다간, 또 이사 미루게
돼요"
"아, 그래요"
아베 카스는 결정하도록 만들기에 열심이었다.
"또 막판에 취소한다면 열받아서 못
견디겠네요"
내가 아베 카스씨의 속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아베 카스씨는 머리를 긁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간에 결론은
빨리,,,,, 상당히 인기가 많은 물건이라..."
"결론은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얼굴을 진절머리를
내었다.
"남은건 할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하는냐 하는것 뿐이예요"
확실히 그게 문제였다.
집에 돌아오니 할아버지를
상대로 엄마의 강한 설득이 시작되었다.
"어차피 앞으로 몇 년안에 집을 헐지 않으면 안되는거 알고 있죠? 시아버님. 그렇다면
이 기회에 손을 써 두는게 좋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지는 엄마얘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일어나 그대로 방을 나가 버리려고
했다. 역시 그 행동이 기분이 상한듯 엄마는 큰 소리를 할아버지 등뒤로 퍼부었다.
"결정했으니깐요,,"
할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되받아쳤다.
"나는 반대다"
"그럼, 좀 앉으세요"
"........."
"앉아서
들어보세요"
"이미 알고있다"
"알고 있는게 아녜요"
"알고있다. 내가 반대한다고 한들 아무
소용없겠지?"
"....맞아요"
"그럼 이사할 수밖에 없는건가"
그렇게 말하고 할아버지는 방을 나갔다. 할아버지가
결국 꺾였다. 하지만 너무나도 어이없게 꺾인 것에 나는 좀 맥빠진 기분이었다.
"영감텡이"
엄마가 불쾌한듯이
지껄였다. 그리고 잠시 후에 내가 이렇게 물어보았다.
"지금 할아버지가 이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어?"
부글부글 끓고 있던
엄마는 핵심적인 말을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튼 이걸로 우리집이 이사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입주는 다음달 중순이다.
"조금씩 짐 챙겨 둬"
엄마가 내린 지령은 다락장의
서재를 가리켰다. 예전엔 아빠의 서고였던 그 다락방은 내가 내 책으로 놓고 나서부터는 점점 황폐해져서 지금은 발디딜 틈도 없게
되었다. 일요일에 마음먹고 난 오랜만에 다락방에 들어갔다. 그런데 15분이나 손쓰고 있자니 점점 귀찮아졌다. 책장
정리같은건 직장에서는 별 고생없이 해치웠는데 우리집 책장이라 그런지 갑자기 맘이 내키지 않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런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 1권의 책이 내 눈에 띄었다. 그것은 중학교때의 졸업앨범이었다. 나는 앨범을 집어들고 생각해보니 중학교 졸업한
이후로 한번도 펼쳐본 적이 없었던 페이지를 넘겼다. 앨범속은 예상외로 보존상태가 좋아서 사각거리는 신선한 소리를 냈다.
게다가 새 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마저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3학년 2반 단체사진을 찾았다. 예전의 동급생들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나타났다.
"모두들 이렇게 전보다 젊어져 버렸네"
전보다 젊어진게 아니다. 내가 나이를 먹은거다.
또 한사람의
후지이 이츠키는 반친구들과는 달리 동그라미 안에 홀로 덩그라니 떠 있었다. 이 중학생이 훗날에 와타나베 히로코와 사귀고
헤어졌다는 걸 생각하니, 아직 아무 것도 모르며 사진속에 들어가 있는 모습이 순진무구하게 보여 귀여웠다.
결국 정리하는걸
포기하고 난 앨범만 끌어안고 다락방을 나왔다.
*
*
*
히로코는 그의 집을 방문했다. 목적은 그 졸업앨범이었다. 모든 일의 발단이 그 앨범이고, 모든
일의 수수께끼의 답이 그 속에 숨겨져 있다.
야스요는 아침일찍 갑자기 나타난 히로코에게도 놀랐지만 다짜고짜 졸업앨범을
보여달라고 해서 영문을 몰랐다. 야스요가 꺼내 준 앨범을 받아들자 히로코는 현관입구에 앉았다.
"히로코,
들어와"
".......예"
앨범에 정신이 팔려있던 히로코는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우선 안으로
들어와"
"예"
그렇게 말하면서도 히로코는 신발만을 벗고 상반신은 앨범에 빨려든 상태였다. 야스요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히로코는 얌전한 스타일로 보여도 상당히 성급하네"
"예?"
"부탁이니 들어와
줄래?"
야스요는 히로코를 간신히 거실까지 데리고 갔다. 거기서도 히로코는 앨범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히로코는 먼제 젤
뒷쪽의 주소록을 확인했다. 그것은 아키바의 예상대로였다. 히로코가 베낀 주소의 후지이 이츠키는 3학년 2반의 여학생명단 속에
있었다. 남학생 쪽에는 어디를 찾아보아도 그의 이름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주소록에 기재되어 있는 후지이 이츠키란
이름은 그녀 한 사람 뿐이었다. 히로코가 그것을 그라고 착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뭐 조사하니? 진지하게
말이야"
야스요가 차를 내오면서 말했다.
"그이 이름......."
"응?"
"실려있지
않네요"
"그래?"
"여기....... 3학년 2반였죠?"
야스요는 앨범을 들여다보았다.
"졸업 전에 이사했서
그럴거야. 안 실려있어?"
반드시 그럴 것이다. 여하튼 이걸로 수수께끼 하나가 풀렸다. 편지왕래도 오다루에 간 것도 모두
이 사소한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로코는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3학년 2반의 학생들과 재회했다.
히나마츠리(일본전통축제)이후의 재회였다. 단체사진 밑에는 순서대로 이름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나의 동그라미 속에 붕
떠있는 그의 이름은 반 친구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후지이 이츠키
같은 이름이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작은 활자가 빽빽하게 늘어선 학생들의 이름 속에서 히로코는 다른
한사람의 후지이 이츠키를 찾았다. 이름은 금방 발견했다. 히로코는 그것을 토대로 사진속에서 당사자를 찾아 냈다. 그
아이와는 첫만남은 아니었다. 그것은 기일(忌日)에 야스요가 장난으로 히로코와 닮았다고 가리킨 그 여자애였다. 기다리다 지친
야스요가 이제 좀 가르쳐 주지 않겠냐고 히로코에게 말했다. 하지만 히로코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저........... 그이랑 같은 학교 학생 중에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 있었어요?"
"응?"
야스요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곧 생각난 듯이 아~~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보니 있었어. 아~~ 있었어. 있었다.
생각났다"
"기억하고 있어요?"
"한번 우리애랑 착각한 적이 있어서"
야스요는 히로코한테 앨범을 뺏아들고 자기가
화제의 인물을 찾기 시작했다. 찾으면서 야스요는 골때린 에피소드를 얘기해 주었다.
"우리 애가 교통사고를 당했었어. 우리
애 오른쪽 다리가 좀 안 좋지?"
"예"
"그 때의 후유증이야. 언제였더라. 학교가는 길에 트럭에 치였는데 다행히 다리만
치였지. 그 때 학교 선생님들이 다른 애와 이름을 착각해서 그 애집에 전화했던거야. 금방 아니란걸 알고 우리집에도
전화를 했었는데 병원에 가보니깐 그 쪽집 사람들도 모두 와서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하고 모두 한바탕 웃었었어. 우리애가 전치
1개월의 중상을 입고 누워있는 옆에서. 그게 골때렸지"
"그 애는 어떤 애죠?"
"글쎄, 본인을 직접 본적이 없어서"
"이 애예요"
히로코는
문제의 여학생 사진을 야스요에게 보여주었다.
"기억안나"
"이 사진과
닮았어요?"
"응?"
"나하고"
"히로코하고?"
야스요는 사진과 히로코를 비교해
보았다.
"닮았나?"
"어머님이 닮았다고
말씀했어요."
"내가?"
"예"
"언제?"
"이전에........"
"그랬었나?"
야스요는 한번도
사진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닮은거 같기도 하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이전에"
"그래?"
"......... 첫사랑의 애라고"
"얘를?"
"그럴지도
모른다고"
"..........."
히로코가 무엇을 그렇게 목매달고 있는지 야스요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닮았다는
것에 뭔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야스요는 슬쪽 떠 보았다.
"정말 자세히 보니 진짜 닮았네"
히로코의
얼굴에 동요의 빛이 스치는 것을 야스요는 놓치지 않았다.
"닮으면 어떻게 되는데?"
"예?"
"이 애와 네가 닮으면
뭐가 있는 거야?"
"아뇨, 그런건"
"거짓말"
"진짜예요"
히로코는 뭔가를 열심히 숨기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숨기는 방법이 서투르다고 야스요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솔직함이 히로코의 귀여운 점이었다. 모성 본능은 야스요의 경우 묘하게 갑자기 나타난다. 역시 이애는 내 며느리삼고 싶었다고
야스요는 생각했다.
"히로코!"
야스요는 장난으로 히로코의 볼을 꼬집었다. 갑자기 꼬집힌 히로코는 놀랬다.
"얼굴에
거짓말이라고 써 있는걸!"
어린 딸에게 말하는 듯한 어투였다.
"닮으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나 이번엔 야스요가 놀랄
차례였다. 히로코의 입이 へ자처럼 되는가 싶더니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가득 차는 것이었다.
"닮았다면....... 용서할
수 없어요"
히로코는 열심히 눈물을 삼켰다.
"그게 나랑 사귀게 된 이유라면 어쩌면 좋아요"
어쩌면 좋아요, 라고
해도 야스요는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몰랐다.
"...... 어쩌면 좋냐고..."
"나한테 한눈에 반했다고 했거든요, 그
이가"
"그래. 그렇게 말했었어"
"그런데 한눈에 반한 건 한눈에 반했는데 확실한 사정이
있었던거예요"
"............"
"제가 속은 거예요"
"히로코"
"예"
"중학생한테 질투하는
거니?"
"....... 그렇군요. 이상한가요?"
"이상해"
"이상하군요"
야스요는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들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히로코에게 감동했다.
"그래도 그 애는 행복하네. 히로코가 질투까지 부리니"
"그런 말씀하시면 또 울어버려요"
겨우 멎으려고 했던
히로코의 눈에 또 다시 눈물이 흘러 넘쳤다.
"........ 역시 간단히는 잊지 못하는거네"
히로코는 눈물을 닦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틈에 전염되었는지 이번엔 야스요가 눈물이 나올려고 했다. 히로코는 앨범을 야스요한테서 받았다.
출근시간에 늦어버린 히로코는 다소 사람이 없는 전차를 타고서 다시 한번 앨범을 펼쳤다.
『한눈에 반한다는 말 믿습니까?』
예전에 그 이가 물어본 말이 히로코 머릿속에서 아까부터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히로코에게 말 걸었을때의 대사였다.
히로코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친한 친구인 오노데라 마스미(小野寺眞澄)에게는 미대생
애인이 있었다. 히로코는 어느 날 마스미가 꼬셔서 미대 전시회를 보러 갔었다. 안내 데스크에 있던 마스미의 애인은 당장은 짬이
나질 않아 나중에 쫓아 들어간다고 말해서 히로코 일행은 먼저 전시실로 들어갔다.
전시회같은 것과 인연이 없는 히로코는
뭐가 뭔지도 모르는 채 마스미의 뒤를 졸졸 쫓아 다녔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꼬신 마스미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영부영하는 동안에 출구까지 오고 말았다. 마스미의 애인이 뒤따라올 때까지 출구에 설치된 공예품
판매소에서 시간을 죽였다. 그 곳에는 유리로 만든 물병이랑 텀블러(바닥이 넓은 큰 병)랑 악세사리가 있었다. 히로코와
마스미는 오히려 이런 쪽이 흥미의 범주에 들어갔다. 가게의 청년은 상술이 능해서 두 사람이 사도록 열심히
노력했다.
"두개를 한꺼번에 산다면 20%할인, 3개 한꺼번에 사면 30% 할인이지만, 아가씨들이 이쁘기 때문에
반가격으로 봉사해 드리겠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해 두 사람을 웃겨서 결국 각각 3개씩 파는데 성공했다. 유리공예품을
종이로 돌돌 감으면서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모두 제 작품이예요. 조심해서 써 주세요"
그가 아키바였다. 왠지
좋은 사람이네. 그것이 아키바의 첫인상이었다. 그 때 커다란 캔버스를 안은 남자가 히로코와 마스미의 옆을 빠져나가 출구쪽에서
안으로 들어왔다.
"어이~ 후지이!"
아키바가 그 남자에게 말을 던졌다.
뒤돌아본 그 남자는 수염이 제멋대로 나있고 눈도 충혈되어 있어서 누가봐도
밤샘한 얼굴이었다.
"이제 된거야?"
"응"
"벌써 갤러리 끝났는데"
남자는 빡돌은듯이 캔버스를 고쳐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사람. 그것이 후지이 이츠키의 첫인상이었다. 늦게 온 마스미의 애인이 아키바를
놀래켰다.
"오잉~ 선배님이 데리고 왔어요?"
"아키바 이놈. 손대진 않았겠지?"
"에잉~ 물건 똑소리나게
사주셨는걸요"
그 날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얼마후 마스미를 통해서 아키바가 애프터를 신청했다. 혼자 만나는게
무서웠던 히로코는 마스미와 함께 갔다. 아키바도 무서웠는지 어쨌는지 친구 한 명을 데리고 나왔다. 그 사람이 바로
이츠키였다.
"기억하실랑가? 그 때 막판에 그림들고 들어온 놈인데"
아키바한테 듣고나서 겨우 그 때의 수염다발 무성한
사람과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고 알았지만 히로코의 머릿속에서는 아무리해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츠키는 침묵을
지키며 거의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목이 말랐는지 아이스커피를 몇 잔이나 마셨다. 그리고 몇 번이나 화장실에 갔었다.
그리고 들썽들썽거리며 때때로 시선이 마주치면 당황하며 눈을 내리 깔았다. 역시 이상한 사람이야. 히로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몇번째인가 화장실에 갔을 때 마스미가 아키바에게 살짝 말했다.
"저 사람 왜 저래? 어쩐지 화난거
같은데"
"얼었어. 여자한테 면역이 안 돼있어서"
아키바는 그렇게 말하고 굳은 표정으로 웃었다. 얼어있다고 하면 아키바도 마찬가지였다.
아키바는 아키바 나름대로 히로코를 찍어놓고 있으면서도 아까부터 마스미하고만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수다쟁이 여자라고
속으론 안달이 났다.
화장실에서 돌아온 아키바는 역시 말이 없고, 또 다시 아이스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나서 잠시후
이번엔 마스미가 화장실에 갔다.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마스미가 없는 자리는 잠깐동안 조용해졌다. 아키바에게 있어서
히로코에게 직접 말을 걸수 있는 찬스였다. 여기서 대화의 주도권을 히로코에게 연계시키지 않으면 앞으로 계속 마스미를 상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될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잡담이 나오지 않아 아키바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도화선을 당길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이츠키가 끼어들었다.
"저기요!"
좀 달아오른
목소리였다.
"와타나베씨는 한눈에 반한다는 말 믿습니까?"
"한눈에 반한다는 거요? 글쎄요"
"저하고
사궈주세요"
히로코도 아키바도 엉겹결에 절규했다. 이츠키도 그걸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묘한 침묵이 세사람 속에
떠돌았다. 난처해진 아키바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이놈 상당히 괜찮은 놈이예요"
아키바는
순간의 사랑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그 사이에 마스미가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 마자 마스미는 따발총처럼 얘기를 했지만 세
사람의 반응은 이상하게도 담담했다.
그 후로 히로코는 이츠키와 사귀게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키바의 헌신적인
응원도 있었다. 한번 포기한 아키바는 이상하리만치 두 사람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2주일간의 생각 끝에 히로코는
이츠키에게 예전의 질문에 대답했다.
"당신의 한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습니다"
그것이 히로코의 대답이었다. 누구보다 골때리게
친해진 사건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서 히로코의 가슴속에 남아 있다.
그 말의 뒤에는 누군가 다른 사람의
모습이 있었던걸까. 그 사람이 그와 동성동명의 여자애였던 것일까. 그가 남모르게 천국으로 갖고 갔을 비밀을 히로코는 지금에서야
발견한 것일지도 몰랐다.
"한눈에 반한다는 말 믿습니까?"
그이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또
들려왔다.
"........믿었는데도"
히로코는 무릎 위의 앨범을 덮었다.
사진 속의 여자애가 그이의 첫사랑이었는지
어쨌는지. 히로코는 좀 더 편지를 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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